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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사

고대 사회의 체육 - 인도, 유태인, 페르시아의 체육

고대사회의 체육사를 알아보겠습니다. 그중 인도, 유태인, 페르시아의 체육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1. 인도의 체육

B.C 2,000년경 인도 아리아족이 인 더스 강변의 토착민을 정복하고, B.C 6 세기 이후 갠지스 강 하류까지 확대하여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로 인해 상공업과 도시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도시 연합을 통해 국가로 발전하였다. 인더스 문명은 토양 아래에서 화려하게 번성하다가 카스트제도가 정착하며 정치와 사회가 변화했다.
카스트제도는 모든 시민을 4 종성으로 분류하여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게 했다. 이는 처음에는 사회적 기능의 분업적 차이를 의미했으나 신분 관계로 고착되어 비판과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새로운 국가체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B.C 550년경 석가모니의 출현으로 인도 사회가 재조직되고 사회개혁이 이루어졌다. 마우리아 왕조의 대제국이 건설되며 불교는 번성하였으나 왕조의 멸망과 함께 쇠퇴하고 힌두교가 발전하였다. 힌두교는 아리아인 이전 토착민의 신앙을 받아들인 종교로,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였고 교육은 실리적, 직업적 목적을 띤다. 최고계급인 브라만의 자녀들은 교육가나 승려로 훈련되며, 크샤트리아의 자녀는 군무나 정무, 바이샤의 자녀는 상업이나 농사, 수드라의 자녀는 노예로 존재하게 되었다.
힌두교는 교육을 통해 시민을 카스트제나 종교교리에 합치는 것을 강조하며, 이는 인도사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인도 체육은 나태함과 종교교리의 영향으로 체육활동이 소홀해졌으며, 승려들은 좌선으로 체육을 대신하였다. 인도의 체육 활동은 종교적 영향으로 인해 부족했지만, 일부 사원에서는 요가를 가르치는 등 체육 프로그램이 제시되기도 했고, 군주와 수행원들은 사냥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여러 신체 활동을 익혀야 했다.
인도에서 사용되었던 마사지 기술은 체력단련, 질병치료, 위생 등의 목적을 가지며, 레슬링 선수들을 위한 특수 마사지 요법도 존재한다.

 

2. 유태인의 체육

고대의 종교는 다신교였지만 유태인들은 전능한 유일신을 믿으며 선민사상으로 힘을 얻었다. 모세 지도 아래 대탈출, 사막 유랑, 분단, 싸움 등으로 체육적 시련을 견뎌낸 유태인들은 더 굳건한 신앙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태인들은 선민사상에 근거하여 자녀교육을 중시하였고, 체육활동과 군사훈련을 통해 생존능력을 강화하였다. 개인적, 공동체적 위생의 가치를 강조하며 신앞에 청결한 몸으로 나갈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무용은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추수감사절과 같은 기뻐하는 절기에 행해졌다.
성서는 영적 능력이 힘의 원천이라 강조하고 체력단련이 중요하며, 히브리인들은 사사를 이끄는 지도자로 체력이 좋은 인물을 삼았다. 군사교육으로는 활쏘기, 칼 쓰기, 창던지기, 방패 다루기, 돌 팔매질을 하였으며 청년들은 공놀이와 같은 스포츠를 즐겼다. 구약성서에서는 유태인들의 스포츠로 수영, 전쟁에 필요한 군사체육, 펀 치볼 던지고 받아 올리기, 핸드볼, 폴로, 뜀뛰기, 근육단련 등이 언급되고 있다.

 

3. 페르시아의 체육

페르시아는 체육을 중요시한 국가로, 근면하고 진보적인 성격을 지닌 산간의 부락 생활을 하던 이들이 모여 대국을 이룬 나라이다. 건조하지만 비옥한 골짜기와 넓은 땅이 있으며, 탁월한 기수와 용맹한 투사로 유명하다. 키루스 왕은 메디아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후 다리우스 1세 때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이집트를 정복하고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 이유는 종교적 관용과 과세 삼가기, 지방 관습 존중과 재판 공정 때문이다.
페르시아 국왕은 최고 신에게만 책임을 지지만 대신들과 협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청소년 교육에 힘써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계승하여 선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설교를 하였다. 국가는 군사 기술, 도덕적 교양, 애국심을 겸비한 청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을 실시했다. 어머니는 유아기부터 순종과 실성을 교육하며, 만 6세부터는 조로아스터 교리에 입각한 교육을 받고 신체적 군사적 훈련을 받아야 했다.
페르시아의 강력한 통치는 건전한 신체 훈련에 의한 것이었으나, 교육 목적이 군인 자질 기르기에만 한정되어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페르시아 아이들은 만 6세에 신체적인 군사적 훈련을 받으며, 이를 마친 후 1년간 승마 기술을 연마한다. 이후 사냥과 함께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자급자족하면서 훈련을 받으며, 15세까지 지속된다. 15세 이후에는 병역 의무를 수행한다.
페르시아 교육은 승리와 지배를 위한 도덕적, 신체적, 군사적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며, 체육은 교양과 연구보다는 오로지 군인 육성에 기여했다.